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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히렐보다 더 가난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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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대 인문학연구소 맹민순 선생님과 <청소년 인성교실>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히렐이 떠올랐다.


'인성'이라는 말이 중의적으로(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도) 쓰이고 있는데,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은 방치되고 있다.

어쨌든 오리서원에서는 청소년 인성교실을 기필코 열어서, 아이들을 뜨겁게 또 온건하게 끌어안을 것이다.


내가 히렐을 떠올린 건, 홍보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였다.

오리서원의 교육기획팀장으로 있으면서, 홍보할 때 늘 내 마음에 영감을 주는 히렐이다.

홍보를 대중추수적으로 하지 않겠다, 그 이전에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고,

정말 좋으면 모든 걸 마다하고 달려올 수 있게 진짜 좋은 걸 찾으려 늘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오리서원 회원님들의 요구사항은 매우 많다.

하지만 나는 단 한순간도 그 요구사항들이 성가시게 느껴진 적이 없다.

그 관심을 모두 오리서원에 대한 사랑이라고 환원시켜 이해한다.


이제 다시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알려야할 시기가 왔는데, 여전히 아쉬워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고 부족함을 느낄 분들도 계실 것이다.

모든 것은 다 차치하고, 서원이라는 공부공간에, 우리는 정말 얼마나 절실한 마음으로 공부하려하는가를 늘 먼저 생각하였으면 좋겠다.

인문학은 먹고 살만한 사람이 여유 있어서 왔다리갔다리하면서 배우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는 절실하다. 그리고 이 절실함을 펼칠 장으로서 오리서원이 있음이 너무 감사하다.

이 감사함을 히렐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적음으로써 대신 표현하고자 한다.


글쓴이 / 임수정(오리서원 교육기획팀장)




유명한 랍비인 히렐이 아직 젊었을 시절, 그는 <토라>를 연구하고자 갈망했다.

그러나 그는 몹시 가난했기 때문에 불타는 듯한 의욕에도 불구하고, <토라>를 연구할 시간이 없었다.

마침내 그는 숙원을 풀 실마리를 찾아 내었다.

히렐은 그의 체력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일을 해서 번 돈을 쪼개어 그 절반으로 생활을 꾸려 나가기로 하고

나머지 절반의 돈을 가지고 학교의 문지기기를 찾아가서 애원했다.

"이 돈을 모두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제가 학교에 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저는 현인들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얼마간 청년 히렐은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가진 돈이 워낙 적었기 때문에 얼마 못가서 빵을 살 돈조차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그를 낙담시킨 것은 굶주림이 아니었다.

학교의 문지기가 그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일이 더 큰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한 일로 학업을 포기할 히렐이 아니었다. 그는 이 역경을 극복해 내었다.

그것은 학교의 창 바깥쪽 문지방 곁에 가로눕는 방법이었다.

거기서는 교실 안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말소리도 다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마침 새버드(안식일)의 전야였는데,

모든 것이 얼어붙은 차가운 겨울날이었다.

그 날 아침 랍비들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나갔더니,

맑게 개인 날인데도 이상하게 교실 안은 어두웠다.

왜 그렇게 교실 안이 어두운지 이상히 여긴 랍비들은 그 원인을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창 밖에 어떤 사람이 누워 있는 게 아닌가. 그 사람의 몸 위에는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 있었다.

그것은 꽁꽁 얼어붙은 히렐의 가엾은 모습이었다. 히렐은 그 자리를 남에게 들키고 않고 차지하기 위해 밤새 그 자리에 누워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 누구든 가난해서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푸념을 하면 그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 본다.

"당신은 히렐보다 더 가난한가?"

히렐의 이와 같은 굽힐 줄 모르는 의지는 후세의 유대 젊은이들에게 커다른 격려가 되어 주고 있다.

여기서, 불타는 향학열의 소유자였던 히렐의 명언을 몇 가지 더 들어 보자.

 

'지식이 더 넓어지지 않는 사람은 퇴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배우기를 마다하는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

'수줍어하는 자는 배울 수가 없다. 성미가 악한 자는 가르칠 수 없다. 속된 일에 빠져 있는 자는 지혜롭게 될 수가 없다.'

'자신을 위해서만 재능을 쓰는 자는 정신적으로 자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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