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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정의 티벳탐방기 / 임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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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갰지만 새벽하늘 구름이 낮았다

 

동부 티베트 순례 닷새째, 랑무스 천장天葬)터 순롓 날이다. 나는 일정이 열리기 전 숙소 랑목사 호텔을 나와 장족, 강족, 회족, 한족이 어울려 산다는 마을로 갔다. 나를 제외한 일행 모두 돈독한 불자들, 천장례라는 주검 분할 작업장에서도 생사여일 유유할 터, 난 어떨까. 좀 켕긴다. 본디 주검에 둔감한 편인지 가까운 이들의 주검을 바짝 맞댔고 몇 번 생을 놓는 이의 마지막도 지켰고 염장이 닿기 전 눈동냥 대중으로 수시도 거뒀지만 주검의 냉기에 별 이물감을 느끼지 못했다. 교통사고로 비명에 간 시아주비의 노닥노닥 기운 얼굴을 쓸어보면서도 영원 별리를 실감할 수 없었다

 

<회민촌소학(回民村小學>이라 종서된 건물을 사진기에 넣고 골목에 선 노파에게 미소했더니 집으로 불러들였다. 마당을 어정거리는 세 마리의 송아지와 강아지에 정신을 파는 내게 노파는 새로 지은 집 유리문을 열어보였다. 울긋불긋한 중국 명승지로 벽을 장식한 큰방 바닥엔 짐승 가죽을 덮었고 선반에 전자제품 상자가 몇 얹혔다. 노파는 내가 감탄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질퍽한 외양간에서 꼬물거리는 짐승의 어린 새끼들에 빠졌다. 노파가 살림집 새까맣게 그으른 좁은 봉당의 따뜻한 곳을 토닥이며 나를 앉으라 했을 때, 양젖을 끓여주겠다고 쪼글쪼글한 냄비를 꺼내고 아궁이에 불을 넣었을 때 나는 비로소 환호했다. 노파에게 사진기를 들이대자 옷을 갈아입고 귀걸이를 달고 와 새 집을 배경으로 섰다. 시골 장터에서 새까만 색안경을 쓰고 오토바이를 몰던 장족 청년이 생각났다. 이어 어떤 날의 할머니와 서너살 박이 손자, 난전의 장족 노인과 그리고 심 교수(심혁주)가 떠올랐다. 눈을 반쯤 내려뜨고 마니차를 돌리며 서너살 박이 꼬마와 사원으로 가는 할머니에게 카메라를 들자 표정을 굳힌 할머니가 고개를 홰홰 저었다. 머쓱했지만 뭐랄까, 그 완강한 거부가 반가웠다. 모처럼 내 맑은 기원이 꼬마에게로 갔다. 초라한 장족 노인은 1998년 첫 티베트 여행 때 라싸의 팔각거리 난전에서 휴대용 마니차를 오래 쓸어보고 있었다. 결국 빈손으로 일어나 한 번 더 마니차를 내려다보는데 꼭 피붙이를 떼놓는 눈이었다. 일제강점기 빠져나가는 우리네 문화재를 그런 눈으로 본 이가 있었을까. 나는 엉뚱하게 중남미 문화원에서 그런 눈이 되었었다. 그리고 심 교수, 그는 중국의 민족 문제를 전공하며 티베트 극 오지의 전통 사원에서 2 년여 라마승과 붙박이로 동고동락하는 등 십수년을 티베트의 종교와 문화에 몰두, 알진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기우는 건 들어난 실적보다 그의 책과 강의에서 얼핏얼핏 비치는 티베트를 향한 진국의 연민이었다. 불교단체 <선우>의 천장문화 탐방에 막무가내 끼어 여정 아흐레 동안이라도 그의 시선으로 티베트를 보리라 맘먹었다. 1950년 중국 침공 이전까지 주권, 독립, 평등, 자유의 개념을 몰랐고 알 필요도 없었던 티베트 인들인 이 불필요한 개념들을 체득하느라 심신으로 피 흘리는데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14대 달라이 라마는 이제 독립이 아니라 민족의 전통문화를 보존케 해 달라간원하는 지경이다. 전통문화가 없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노 라마의 철학은 곧 심 교수의 그것일 것이다

 

천장터로 가는 50여분 판판하게 닦여 슬슬 휘던 길이 산 쪽으로 꺾이자 대뜸 패이고 무너지며 비스듬한 오름이 되었다. 길 양편은 온통 꽃 벌, 여린 줄기 끝에서 하늘거리는 여름 꽃이 안쓰럽다. 나는 심 교수의 시선으로 꽃을 보며 천장례와 티베트의 운명을 묵상 했다. 티베트 여행자들이 티베트 문화의 상징성과 위기감에 눈 돌려주기를 바라는 심 교수는 원시 형태 그대로 보존 유지되어온 천장례야말로 티베트 전통문화의 핵이라는 시각이다. 중국의 당근정책은 티베트 인들의 구미는 맞췄지만 정작 그들에게 필요한 병원과 학교를 세우는 대신 길을 뚫고 한족 이주를 서둔다. 조선족 현지가이드는 티베트 인들은 일생 놀고먹어도 된다고 반농조로 말했고 심 교수는 장족 젊은이들의 영혼이 당근에 파먹힐까 걱정했다. 일례로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천장보다 화장이나 전장(電葬)을 선호하는 추세, 심 교수에게 그것은 천장례의 위기요, 전통문화의 위기 곧 티베트의 어둔 미래를 의미했다. 그는 썼다. ‘수천 미터 고도에서 살아가는 소수 티베트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지상 세계에 던져주는 메시지는 생각 외로 크다. 세계의 저명한 과학자들과 의사들도 티베트의 정신세계에 관심을 보이며 대화를 원하고 있다. 소위 과학과 종교의 만남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구체적으로 티베트 불교와 서구 과학의 만남은 최근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의 초조와 우려가 깊어질 밖에 없다.

 

앞서 걷던 일행 몇이 기어이 꽃 벌로 들어섰다. 그들은 핸드폰을 이리저리로 돌리며 꽃 벌을 찍었다. 심지어 미소한다. 그들 미소에 내 켕김이 약간 눅었다. 하긴 천장터는 아직 한참 앞이었다. 펀펀한 푸른 산록에 부서뜨린 꽃송이처럼 오색 타르초가 둥그스름 울타리 친 위를 몇 마리 까마귀가 선회한다. 흐릿한 연기도 보였다. 이윽고 짤막한 시멘트 기둥 두개가 시옷()자로 기대어 길 양편에 문 구실로 섰다. 문이라면, 이쪽과 저쪽 사이나 안과 밖의 가름막일지니 얼개만이라도 입구자(()는 꾸려야 함에도 시멘트 두 토막으로 생략했다. 전세(轉世)를 굳게 믿으니 금생의 끝과 내생의 기점인 주검분리작업장과 사파 사이에 구태여 가름막을 치랴싶었던 걸까

 

타르초 울타리를 넘어 들어갔다. 천장의식은 진작 끝나 시취(尸臭)는 없었지만 맷돌짝 크기의 돌 도마 주변은 야크차로 질척했다. 천장사가 한 시간여 작업 도중 참참 마시며 흘렸으리라. 녹슨 해머와 큰칼은 한켠에 모았지만 가위와 잔 칼과 독수리 깃털과 머리털 뭉텅이와 손가락 크기의 뼈 조각들이 총총 깔렸다. 수없는 칼질로 허리가 잘록해진 나무토막 가까이에 뒹구는 주먹크기의 턱뼈엔 이빨 여섯 개가 아직 생생하다. 환경오염 때문에도 천장이 경원당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기왕 일행에서 뒤쳐진 김, 타르초 울 밖을 좀 걸었다.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하늘로 돌아가리라고 천상병은 읊었다. 나는 내 셈 바치는 날을 계획한 적 없다. 이 숭엄한 영육 분리 작업장에서 냉랭하게 환경 오염운운할 수 있었다. 심 교수에게 면목없는 채 다시 시옷자 문 앞, 일행들은 꺾임 길 어름까지 멀어졌다. <장자의 나비꿈>을 끌어왔지만 오래 헷갈리지 않았다. 어떤 화두로도 티베트를 향한 심 교수의 시선은 요지부동일지니 그에 기대고 천천히 걸음을 뗐다. 끝. The EnD. BUT. 짜이지엔. 워쓰 JACKEY LIM.林. 


□ 글쓴이 : 임수정(오리서원 교육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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