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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산책30] 신년에 희망하는 역사의 새 기운/노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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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일까. 역사라는 운동에 소장성쇠(消長盛衰)의 패턴이 있는 것일까? 조선후기 문인 조구명(趙龜命, 1693~1737)은 중국의 역사를 남세와 북세의 일진일퇴로 성찰한 적이 있다. 그는 중국사를 거시적으로 북녘에서 일어난 이적이 남진하는 북세남진의 국면과 남녘에서 일어난 중화가 북진하는 남세북진의 국면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았다. 원나라가 남진했다면 명나라는 북진했다. 다시 청나라는 남진했다. 언젠가 남녘에서 일어난 이적이 북진하여 중국을 석권하면 역사의 패턴이 달라지면서 역사는 종말에 도달할 것이다. 북세남진에서 남세북진으로, 그리고 역사의 종말로, 흥미로운 발상이다. 
 

북세남진의 시대, 남세북진의 시대 

   그런데 조구명의 이 아이디어를 이어받아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역시 『대한매일신보』에서 한국사의 거시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우리나라 역사도 크게 북에서 남으로 내려왔던 북세남진의 국면과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남세북진의 국면이 있었도다. 과거에는 북방에서 시작해 남방으로 발전하는 시대였지만 이제는 남방에서 시작해 북방으로 발전하는 시대로다.

   무슨 뜻일까? 신채호의 관찰을 현대적으로 각색해서 옮겨 본다. 고구려는 처음 압록강 근방에서 터전을 만들었다가 광개토대왕의 화려한 대정복의 시기를 거쳐 장수왕에 이르러 대동강으로 내려와 평양에서 새로운 터전을 만들었다. 고구려 세력은 남진하여 한성 백제를 멸하고 다시 신라를 압박하여 충주에 중원고구려비를 세웠다. 백제는 처음 한강 유역에서 터전을 만들었다가 금강으로 내려와 공주와 부여에서 새로운 터전을 만들었다. 백제 세력도 남진하여 영산강 유역 지배를 강화하고 바다 건너 탐라를 복속시키는 한편 새롭게 섬진강 유역을 장악하고 가야를 압박하였다.

   고구려와 백제가 북세남진의 주역이었다면 남세북진의 주역은 신라, 고려, 조선이었다. 신라는 진흥왕 때 한강 유역을 거쳐 함경도까지 북진을 거듭하여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 등지에 순수비를 세웠다. 고려는 평양에 서경을 설치하고 북진정책을 추구하여 서북면으로 요나라와 교섭하여 압록강 동쪽 강동 6주를 얻었고 동북면으로 여진족을 정벌하여 동북 9성을 축조하였다. 조선은 세종 때에 최윤덕을 파견해 압록강 상류에 4군을 개척하고 김종서를 파견해 두만강 유역에 6진을 개척하였다.

   신채호의 논의는 여기서 멈추었지만 남세북진의 기운은 근대에도 계속 이어졌다. 이 경우 북진의 주역은 국가가 아니라 민족이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수많은 조선 사람이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하여 농토를 개척하고 마을을 만들고 학교를 세웠다. 많은 지사들이 만주와 연해주로 흘러들어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홍범도의 봉오동 전투, 김좌진의 청산리 대첩이 일어난 곳은 모두 만주였다. 그렇다면 고대부터 근대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패턴은 거시적으로 이와 같이 ‘북세남진에서 남세북진으로’ 변해 왔다고 말해도 좋을까?

   신채호가 한국사의 흐름에서 ‘북세남진으로부터 남세북진으로의’ 원리를 독해한 것이나 조구명이 중국사의 흐름에서 ‘이적의 북세남진’과 ‘중화의 남세북진’이 반복되다가 ‘이적의 남세북진’으로 역사의 종말을 예견한 것이나 모두 역사의 거시적 흐름에서 역사 진행의 어떤 원리를 발견하고자 하였던 치열한 노력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자기 시대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의지가 개재해 있었다. 

 
서세동진이든 동세서진이든 평화의 세계사를 

   일본의 한국 병합이 임박한 1910년 신채호가 한국사의 남세북진을 발견한 것은 한편으로 역사의 장기적인 원리로 보면 한국은 멸망하지 않고 지금보다 더욱 북진하여 위대한 국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를 불어넣는 차원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거기에는 만주의 고토로 북상하여 독립운동의 거점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식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과거 광개토대왕의 고구려가 한반도로 남진하여 왜를 섬멸했듯이 만주에 결집한 한국의 독립군이 한반도로 남진하여 일본을 격파하기를 갈망했을지도 모른다.

   조구명은 중국사를 말했고 신채호는 한국사를 말했으니 이제는 세계사 차례인가  신년에는 누군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갖고 마찬가지 방식으로 세계사의 기운을 설명해 주면 좋겠다. 단, 이제부터는 평화의 역사이다. 평화의 세계사가 어떤 패턴으로 운동하는지 거시적인 통찰을 들려달라. 남세북진도 좋다. 북세남진도 좋다. 서세동진도 좋다. 동세서진도 좋다. 무술년 새해 세계 곳곳에서 동서남북으로 환히 평화의 기운이 뻗어 나가기를 꿈꾸어 본다. 우리 사는 이 땅이 평화의 세계사의 한복판에 놓이기를 염원한다.

 

 

□ 글쓴이 / 노관범(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부교수)
논저 <기억의 역전>,<고전통변>,<대한제국기 실학 개념의 역사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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