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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산책32] 갑질 대학/강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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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대학에 발령을 받았을 때다. 기획실에서 전화가 왔다. 어떤 기관에서 내가 근무하는 대학을 심사하고 평가하는 일이 있을 예정이니, 서류를 준비하는 일을 맡아서 하란다. 물정 모르는 어리보기 신임교수는 응당 그래야 하나 보다 하고 맡아 하겠노라고 답했다. 하지만 일이 시작되고 보니, 시간과 품이 적잖게 들었다. 나는 한 학기 내내 그 일에 시달렸다.

   2학기가 되자 학력고사 참관교수를 하란다. 그때는 학력고사를 치면 대학에서 교수 1명, 고등학교에서 교사 1명이 시험장에 나가서 하는 일 없이 종일 있다가 돌아오는 이상한 제도가 있었다. 나는 영광스럽게 시험장인 부산 시내 모 고등학교 교장실에서 하루를 흘려보내고 왔다. 
 

 

신임 교수에겐 이런저런 부담이  

   학과 안에서도 가르치기 까다롭고 귀찮은 과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손이 많이 가는 교양과목의 교재를 만드는 일도 시작해야 했다. 원로 교수님의 원고 치다꺼리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이런 일들로 인해 시간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새어나가고 있었다. 교수가 되면 공부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나의 일방적 희망이었을 뿐이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진 뒤 찬찬히 둘러보니, 그런 일들은 으레 신임교수에게 몰리는 것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선임들은 이미 그런 일을 숱하게 해 왔으니까, 신임이 그런 일을 맡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공평’한 것일 수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나 자신이 신임 시절 그런 귀찮은 일을 맡았던 것에 큰 불만은 없다. 이후 그런 일을 계속했던 것은 결코 아니니까 말이다.

   지금도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아 신임교수는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하기 마련이다. 물론 달라진 것도 있다. 논문을 더 많이 써야 한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대학은 신임교수에게 논문의 과도한 ‘증산’을 요구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도 근자에 총장 ‘갑’이 신규 임용예정자인 ‘을’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규정을 초과하여 더 많은 논문을 쓸 것을 요구했고, 아니 강요했고, 힘없는 ‘을’들은 항의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불공정한 계약을 맺었다. 이것이 지금 문제가 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오랜 불안정한 생활 끝에 교수가 되면 안도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낀다. 너무나도 기쁘다. 하지만 임용 이후 한참동안 적응하는 데 애를 먹는다.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어리둥절한 분들도 있고, 집을 옮기지 못해 가족과 떨어져 하숙을 하는 분들도 있다. 처음부터 기러기 생활을 작정하는 분도 드물지 않다. 새로운 과목이 주어져 강의준비에도 정신이 없고, 앞서 말한 것처럼 뜬금없이 낯선 업무를 맡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역시 논문이다. 서울에서 만난 어떤 후배 교수는 임용 이후 과중한 논문 쓰기에 시달려 생기가 없었다. 

 
도리어 3년 동안 논문 부담 없애야  

  대학이 이렇게 논문의 증산에 광분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모모한 신문사에서 하는 대학평가에서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을’의 처지에 있는 임용예정자에게 대학은 서슴없이 ‘갑질’을 해대는 것이다. 그렇게 쥐어짜듯 써낸 논문이 무슨 대단한 내용이 있을까  (문득 사탕수수 농장의 마름이 노예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장면이 떠오른다) 논문은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창의성이 중요한 것이지만, 그 창의성은 외적 강요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 대학은 논문의 창의성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논문의 편수, 곧 생산된 논문의 수량일 뿐이다. 이게 지성을 내세우는, 최고의 교육이관이라는 대학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쥐어짜면 쥐어짜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논문을 써낼 것이고 그래서 대학의 연구역량이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도리어 신임교수에게는 3년 동안 논문을 쓸 의무를 면제하고 우선 정착하여 숨을 좀 돌리고 앞으로의 훌륭한 연구를 위해 에너지를 축적하는 데 힘쓰라고 권고해야만 연구다운 연구, 논문다운 논문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책을 표방하는 대학이 우수한 인재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촛불혁명 이후 대학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바뀌는 것은 별로 없다. 사람을 쥐어짜는 낡은 정책과 관행은 여전하다. 아니, 갑질은 위세를 더 떨치고 있다. 갑질 없는 대학에서 연구하고 가르치고 싶다!

 

 

□ 글쓴이 / 강명관(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저서 <신태영의 이혼 소송 1704~1713>,<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이 외로운 사람들아>,<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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