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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산책42] 어쨌거나 고맙수!/강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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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李德懋)의 『사소절(士小節)』은 선비가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자잘한 예의범절을 조목조목 적어놓은 책이다. ‘뭐, 이런 것까지!’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 웃을 때도 있지만, 찬찬히 곱씹어 보면, 대부분은 지금도 지켜야 마땅한 그런 것들이다. 그 중 언어 습관에 대한 몇 부분을 보자.
 

서민의 용어라고  저급한 인격의 증표

   “남을 ‘이놈, 저놈’이니 ‘이 물건, 저 물건’이니 하고 일컫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비천한 사람이라도 화가 난다 해서 ‘도적’이니 ‘짐승’이니 ‘원수’니 하거나, 거기에 덧붙여 ‘죽일 놈’이라 한다든가 ‘왜 뒈지지도 않느냐 ’는 등의 욕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미운 사람이라 해도, 천박한 말이나 저주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들어봄 직하다.
 
   “어떤 일이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발칵 화를 내며, 내가 죽어버려야 한다느니, 남더러 죽일 놈이라느니 하는 말을 내뱉어서는 안 된다. 이놈의 세상, 이놈의 나라 무너지고 망해버리라는 말도, 떠돌며 빌어먹으라는 말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막말은 책임을 남에게 지우고 자신의 잘못을 세상 탓으로 돌리는 데서 나온다. 막말을 하는 사람은 저급한 인간인 것이다. 저급한 인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막말을 하지 않아야 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막말은 누구라도 삼가야 할 것이다. 남의 앞에 서서 큰 책임을 맡아 큰일을 하는 사람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예기(禮記)』「곡례(曲禮)」에 이런 말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경건한 마음으로 엄숙하게 생각하며 그 말을 안정되게 하면(급박하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백성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毋不敬, 儼若思, 安定辭, 安民哉!)” 이 구절은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요즘으로 치면 정치인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곧 정치인의 말은 경건하고 엄숙하고 진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들이 편안하게 된다. 당연하지 않은가.
 
   최근 ‘말’을 둘러싼 언론 보도를 보면 이와는 딴판이다. 제1 야당의 대표는 정제되지 않은 자신의 말을 ‘서민의 용어’를 알기 쉬운 비유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정말 그런가  그가 쓴 ‘바퀴벌레’니 ‘연탄가스’니 하는 말은 그 자체로서는 중립적이다. 하지만 언어는 발화(發話)의 구체적 맥락에서 의미를 갖는다. 곧 그가 ‘바퀴벌레 혹은 연탄가스 같은 자’란 말을 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어떤 곤충과 기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음습한 곳에서 더러운 짓거리를 하거나 은밀히 나타나 남을 해치는, 불결하고 음험한 인간이란 뜻을 갖는다. 특정인을 겨냥해서 내뱉은 이런 의미의 단어가 ‘서민의 용어’란 것인가  동의하기 어렵다. 그 당의 수석대변인이 경찰에게 퍼부은 ‘미친개’란 말 역시 서민의 용어는 아닐 것이다.

 
평소 교양 수준을 숨김없이 보여주니

   며칠 전 대기업 회장의 딸이 직원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부은 녹음 파일이 공개되었다. 땅콩 회항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의 동생이다. 이 가족은 돈의 권력을 세습한 사람들이다. 이른바 ‘서민의 용어’를 일상적으로 구사하는 분들의 당은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의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집단이다. 지금도 그 위세는 막강하다. 이 두 부류, 곧 재벌과 정치인은 한국사회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언제나 ‘갑’의 위치에 있는 고귀한 분들이다. 그러니 이들이 남의 충언을 듣고 자신을 돌아볼 리는 만무할 것이다. 『사소절』이나 『예기』 등의 책을 읽을 리는 더더욱 없겠지만, 그래도 한 마디 더 건네 본다. 역시 이덕무의 말이다. “뾰족하고 경박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 하거든 먼저 가슴을 짓눌러서 입 밖으로 나오지 말게 하라. 남으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해가 따를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아니한가 ”
 
  사족. 말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평소의 교양과 사고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나는 그분들이 교양으로 몸을 흠뻑 적신, 우아한 사고를 갖고 있는 분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스스로 몸소 민낯과 속내를 이렇게 보여주시다니! 어쨌거나 고맙수! 이제 우리도 당신들을 깊이 경멸할 수 있으니까.
 
 
□ 글쓴이 / 강명관(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저서 <신태영의 이혼 소송 1704~1713>,<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이 외로운 사람들아>,<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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