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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산책43] 산티아고 순례자/최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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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 번도 하지 않을 테지만 어쩐지 관심이 가는 것
   아마도 평생 갈 일이 없을 테지만, 어쩐지 관심이 가는 장소가 있다. 900Km에 이르는 산티아고 순례길. 작가, 화가, 가수, 대학생, 휴직자, 퇴사원, 실직자, 무직자, 실연한 사람, 그냥 여행자가 쓴 책을 읽으며 호기심에 다가가고 있다. 최근에는 독립출판으로 나온 책을 읽었다(윤지니, 『Spanish Horror』, 여행마을). 〈나의 산티아고〉(I'm Off Then, 2015, 줄리아 폰 하인츠 감독)라는 영화를 볼 때, 관객은 채 열 명이 되지 않았다.

    나는 왜 순례라는 주제에 끌리는 걸까. 자신을 고즈넉하게 반추하며,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을 생각하는 영성에 대한 로망일 수도 있다. *

  사람은 왜 순례길을 떠나나
  산티아고 여행기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은 걸으면서 깨닫는 삶의 진리가 아니라, 다리와 발바닥의 통증에 관한 것이다. ‘다리가 거기 있었다’, ‘발톱이 없어도 사람은 걸을 수가 있다’는 등, 인체의 밑바닥에 있으면서도 가장 관심을 덜 받는 발과 다리에 대한 내용은 항상 흥미를 끌었다. 정신의 고도에 이르려면 육신의 고행이 선행돼야 하는 것일까. 돌에 밟혀 상처 입고 고통을 느끼면서도, 길을 향해 걷는 이야기가 거기에 있다.

   길 떠나는 이들은 사람이 서로를 탐하고 살피는 인생살이의 피로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무엇을 찾으려 한다기보다, 그저 걷는 것이다.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 사람이 축적해 온 시간을 믿었다. 노란 화살표와 순례길이 그 증거다. 벚꽃을 보러 봄밤 산책을 하듯,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만나기 위해, 걷고 또 걷는다.

  산과 나무의 말을 듣다
  혼자 걷기도 하고 우연히 만난 동행자와 걷기도 한다. 사소한 일로 헤어지기도 하고, 다시 만나 필요한 것을 나누기도 한다. 안 좋게 헤어졌어도 상처 입은 발을 보면 일회용 밴드를 건네는 평화의 룰도 있다.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이니 이런저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길이 멀고 험해 생각조차 없이 걷다 보면, 작은 부딪침에서도 큰 의미를 얻는지 모른다. 분명한 건, 그 느낌이 두 발로 걸은 만큼 나아간, 몸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신체와 자연의 접촉면에서 사유와 감각의 물꼬가 트인다. 발을 움직여 걸음으로써, 산과 나무, 흙과 바위, 물과 바람의 소리를 듣는 마음의 귀가 열린다.

   자연은 언제나 세상 만물을 향해 신호를 보낸다. 그 기호를 읽을 줄 모르니, ‘피톤치드‘라는 말로 자연에서 얻는 상쾌감을 납득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단어가 없을 때에도 사람들은 자연에서 치유 받고 위로를 얻었다. 자연이 건네는 신호는 단선적이고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과 만나려는 의식과 무의식, 의지와 공명해 이루어진다.

   걷는 행위는 시간의 육체에 아로새겨진 마음의 무게를 진동시키는 일이다. 걸어서 몸을 움직일 때, 비로소 스스로 외면해왔던 마음과 생각이 감춰진 날개옷을 입고 소리를 내는 게 아닐까.

  세상 밖에 던져진 자의 자기 책임성
  정신과 의사로서 사회학과 철학, 심리학을 공부한 앨리스 밀러(1923~2010)는 “진실한 감정을 부정할 때 몸에 어떤 결과가 도래”하며, 몸은 병을 통해, 마음을 숨기고 현실과 타협한 데 대한 대가를 치른다.**고 말했다.

   우리는 할 일을 하는 이성의 언어에는 익숙하지만, 살기 위해 외면한 마음에 대해서는 무책임하다. 몸이 병적 징후로 증상을 호소하기 전까지, 교양의 법칙과 슈퍼에고(super ego)***의 명령에 따라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기 바쁘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내면에 깃들어 살아가고 있다.

   프랑스의 작가 장 주네는 조각가 자코메티의 작업에 대한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독특하고 저마다 다르며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로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이 상처는, 누구나가 자기 속에 간직하여 감싸고 있다가 일시적으로나마 뿌리 깊은 고독을 찾아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은신처처럼 찾아들게 되는 것이다.”****

   비록 산티아고에 가지 않더라도, 스스로 외면한 자기 진실과 만나기 위한 노하우는 필요하다. 그것이 세상 밖으로 던져져, 하루하루 살아가는 스스로에 대한 의무다. 살다보면 시간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언제나 다음으로 미루게 된다. 일상에 빗금을 긋고 순례길로 향하는 것은 그 나약함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사람이 몸으로 만든 행위, 삶, 길에는 인간다움의 역사가 함축되어 있다.

   삶을 되돌아보면, 순례길을 걷느라 까진 발, 빠진 발톱처럼 여기저기 마음과 정신, 관계에 상처 나고 굴곡진 내역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산티아고에 가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인생길의 순례자다. 마음의 방향을 정하고 길에서 얻은 상처를 돌보며 간다. 도움을 받고 또 주면서 간다. 왜 사는지 알지 못해도, 화살표를 따라 걷는 순례자처럼, 생의 끝까지 가봐야 한다.

   걷기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살아 있음 자체가 이미 목적이고, 때로 지향이기 때문에.
 

 * 영성은 개인에게 건강 회복이나 총체적 돌봄, 환경 파괴에 대응하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실천적 문화 자원을 제공해 준다고 한다(김현미, 「수행하는 사람: 청년 도시 명상자의 대안적 삶의 미학」, 아시아 미 탐험대, 『아름다운 사람』, 서해문집, 2018, 120쪽)
 ** 앨리스 밀러, 『폭력의 기억,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신홍민 옮김, 양철북, 2006, 9ㆍ15쪽.
 *** 슈퍼에고: 정신분석가 프로이트가 제안한 자아의 삼중 구조 모델의 하나로, 초자아, 또는 상위자아라고 하며, 인격의 사회가치, 양심, 이상, 금지와 명령(양심)에 관여하며,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조)
 **** 장 주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윤정임 옮김, 열화당, 2007, 6~7쪽.

 

 

□ 글쓴이 / 최기숙(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교수(한국문학 전공))
저서 ,<감정의 인문학>
<감정의 인문학>,<조선시대 어린이 인문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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