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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이야기②] 이순신,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김영호
등록일 2016-05-26 조회수 2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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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이 예상되는데도 상관의 인사청탁을 거절
같은 문중의 이조판서를 오히려 피해

32세의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한 이순신은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이라는 종9품의 말단벼슬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변방에서 고생하던 그가 35세가 되던 해(1579)에 종8품의 훈련원 봉사에 임명되었다. 말단이지만 서울에서 군사 훈련과 무과 시험을 주관하는 훈련원에 근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출세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때 병조 정랑 서익이 이순신을 찾아왔다. 서익은 자신과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을 승진시켜 줄 것을 청탁했다. 병조라면 훈련원 직속의 상급 기관이다. 서익의 말을 묵묵히 듣던 이순신이 입을 열었다. 

“아래에 있는 자를 건너뛰어 올리면 당연히 승진해야할 사람이 승진하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것은 공평하지 못할뿐더러 법규 또한 고칠 수가 없습니다.”

1580년 가을, 이순신은 전라좌수영 예하의 발포만호로 부임했다. 무려 여덟 단계를 건너 뛰어 종4품의 만호가 되었으니 고속승진을 한 것이다. 이순신이 전라도에서 수군 지휘관으로 복무했던 경험은 임란 때 빛을 발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 자리를 명예롭게 마무리하지 못했다. 임기가 끝날 무렵이던 1582년 봄에 군기를 제대로 보수하지 않았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파직되었던 것이다. 군기를 점검하러 왔던 경차관은 바로 3년 전 이순신에게 인사 청탁을 요구했던 서익이었다. 이순신이 발포 만호로 부임한 초기에 직속상관 전라좌수사 성박이 거문고를 만들겠다며 객사 오동나무를 베어가려는 것을 막은 일도 파직에 한 몫 했다.   

사실여부를 떠나 임무 소홀로 파직을 당한 이력은 이순신의 관직생활에 심각한 장애가 되었다. 1582년 여름, 다시 훈련원 봉사로 복직되어 근무하던 이순신은 이듬해 가을, 함경도 절도사의 군관을 거쳐 함경도 건원보 군관으로 일하게 되었다. 원칙에 충실했던 이순신은 30대 후반에 최말단의 9품관으로 변방을 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이 훈련원 봉사로 재직하던 시절의 일화가 하나 더 있다. 당시 이조판서로 재직하고 있던 율곡 이이가 이순신이 자신과 같은 문중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순신과 친한 서애 유성룡에게 만나 보았으면 한다는 뜻을 비쳤다. 유성룡을 통해 사연을 전해들은 이순신의 대답은 이랬다.

“나와 율곡이 같은 성씨라 만나 볼만도 하지만 이조판서로 있는 동안에 만나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공직자로 올곧았던 이순신. 그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지만 후일 구국의 영웅은 뭔가 달랐다. 

□ 글쓴이: 김영호(오리서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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