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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이야기③] 이원익 리더십의 비결- 청렴, 근검, 애민, 무비(武備)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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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을 본받으라
대신할 사람이 없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3년째 되던 1594년(선조 27년). 전쟁은 불행이었지만 인재가 분명히 드러나는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 이원익은 평안도 관찰사를 맡고 있었다. 그 무렵 선조는 이원익을 높이 평가했다.


“평안 감사 이원익은 재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가짐이 절검(節儉)하고 나라를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으며 군기(軍器)·군무(軍務)에 있어서도 모두 극진히 조처하느라 밤낮없이 근고(勤苦)하고 있다는데, 팔도를 전부 그와 같은 사람을 얻어 맡긴다면 힘들이지 않고 성효(成效)가 있게 될 것이다.”(선조 27년(1594) 4월 17일)


재략도 재략이지만 부지런함을 높이 평가 받았다. “이원익은 그의 재략은 논할 필요가 없더라도 그의 부지런함은 누구도 미칠 수 없다. 평양의 성안에 검술과 포 쏘는 법을 익히지 않은 자가 없다고 한다.”(선조 27년 6월 26일)


경상도 관찰사 홍이상을 불러 만났을 때도 선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옛 사람을 멀리 끌어댈 것 없이 평안 감사 이원익 같은 사람을 경은 본받아야 한다.”(선조 27년 8월 15일)


나중에 이원익을 정승으로 추대하자는 말이 나왔을 때 선조는 당장 평안도 관찰사를 누가 할지 걱정했다. “평안 감사가 체직된다면 어떤 사람이 그를 대신할 수 있겠는가?”(선조 27년 11월 6일)


평안도 관찰사로 있던 그해  6월 24일, 실록 기사엔 사신(史臣)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임진년 변란 때 이조판서로 평안도 순찰사를 삼았다가 얼마 안되어 본도 관찰사로 삼았다. 이원익은 스스로의 몸가짐을 청렴하고 간소하게 하여 하루에 먹는 음식이 몇 가지에 지나지 않았으며, 민폐를 살피고 무비(武備)를 잘 닦았기 때문에 비록 전쟁을 겪었어도 백성들의 마음이 흩어지지 않았다. 임기가 만료되어 체직하게 되었는데 상이 유임시켰다.”


이원익은 스스로 청렴 간소하고, 백성들에게는 민폐를 잘 살피고, 군사적 대비를 게을리하지 않아서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 글쓴이: 김영호(오리서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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